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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여행지
서울 성곽은 옛 조선의 도읍인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도성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경복궁과 종묘, 사직단을 세운 뒤 곧장 서울 성곽을 축성했다. 1395년(태조 4년) 9월에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해 성곽의 자리를 정하고, 서울을 감싸고 있는 내사산(內四山)인 북쪽의 백악산(북악산), 동쪽의 인왕산, 남쪽의 목멱산(남산), 동쪽의 낙산을 잇는 서울 성곽의 축조에 들어갔다. 그해 겨울부터 봄까지 1차 공사가 진행되었고 다시 그 이듬해 겨울에 2차 공사를 벌여 서울 성곽을 완성했다. 이 공사에 동원된 연인원이 20만명이 이른다고 하니 얼마나 대공사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서울 성곽에는 네 개의 큰 문인 사대문과 네 개의 작은 문인 사소문을 두었다. 사대문은 남쪽의 숭례문(崇禮門), 동쪽의 흥인문(興仁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 현재는 없음), 북쪽의 숙청문(肅淸門, 뒤에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이 바뀜)이었고, 사소문은 동북의 홍화문(弘化門, 뒤에 혜화문惠化門으로 이름이 바뀜), 동남의 광희문(光熙門),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서남의 소덕문(昭德門, 현재는 없음)이었다. 이중 동쪽의 흥인문(興仁門)만 둥근 옹성을 쌓아 성문을 보호했고, 이름에 ‘지(之)’ 자를 넣어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 불렀다. 또 북쪽의 숙청문은 북악산에 있는 암문으로 평소에는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사대문임에도 문루를 작게 만들었다. 당시 성곽은 돌로 쌓은 석성과 흙으로 쌓은 토성이 섞여 있었으며, 구역을 나눠 각각 지방에 책임을 맡겨 그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그 구역을 성곽을 축조했다고 한다. 이렇게 각 지방 사람들이 쌓은 구간에 그 지방의 이름을 새겨놓아 책임을 명확하게 했다.
그후 세종 때인 1422년(세종 4년)에 성곽을 크게 보수했다. 이때 흙으로 쌓은 토성 부분을 모두 석성으로 바꾸고 성곽의 높이를 높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성곽의 윗부분인 여장(女墻)을 만들고 여장에 총안을 만드는 등 좀더 발전된 성을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 이후 숙종 때인 1704년(숙종 30년)부터 시작해 5년간에 걸친 대대적인 성곽 보수가 있었다. 그러나 서울 성곽은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많은 부분이 망실되었고 또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파괴되어 많은 부분이 없어졌는데 최근에 서울 성곽의 복원이 시작되면서 구간별로 서서히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서울 성곽의 총 길이는 약 18km 정도이고 현재 복원된 구간은 약 10km, 복원이 가능한 구간은 약 2.5km 정도라 한다.
축성 방식의 차이
[서울 성곽의 축성 시기별 차이]
서울 성곽은 처음 태조가 축성하고 약 20여년 뒤에 세종이 크게 보수하고 다시 약 300년 뒤에 숙종이 대대적인 보수를 했는데, 각 시기별로 축성 방식이 달라 그 차이를 볼 수 있다. 일반인도 조금만 신경 쓰면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태조 때 처음 쌓은 성곽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했으며 성벽 아래쪽 기초석에 길고 큰 돌을 많이 썼다고 한다. 또 세종 때 쌓은 성곽은 돌을 긴 직사각형 형태로 가공해서 사용했으며 중간 높이 위로는 점차 작은 돌을 쌓았다고 한다. 숙종 때 성곽은 가장 구분하기 쉬운 성곽으로 모든 돌을 반듯하게 사각형으로 다듬어 빈 틈이 없을 정도로 잘 들어맞는다. 돌도 비교적 큰 돌들을 이용했다.
여장과 총안
[성곽 위쪽의 복원된 부분이 여장이다. 성벽 위에 쌓은 담으로 성곽 안쪽을 걸을 때는 여장만 보며 걷게 된다. 여장에 뚫려 있는 사각형 구멍이 총안이다]
또 세종 때 성곽을 보수하면서 여장과 총안을 만들었는데, 여장이란 성벽 위에 쌓은 담으로 가운데 사각형의 구멍을 냈다. 이 구멍을 총안이라 부르는데 전투 시 이 구멍을 통해 활이나 총을 발사하는 용도였다. 가운데 있는 경사가 급한 구멍이 가까이에 있는 적을 쏘는 근총안이고 양쪽에 있는 경사가 완만한 구멍은 먼 곳에 있는 적을 쏘는 원총안이다. 또 여장에는 지붕처럼 생긴 옥개석을 얹어 빗물이 여장을 손상시키는 것을 막았다..
각자석과 암문
[암문]
서울 성곽에는 글씨가 새져진 돌들이 있는데, 이 돌들을 각자석이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서울 성곽을 쌓을 때 각 지방의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해 그 구간의 책임자와 공사 구간, 공사 시기 등을 돌에 글을 새겨놓았는데, 이 돌이 각자석이다. 암문은 사대문과 사소문 외에 성 안팎을 드나들 수 있는 문이다. 비상시에 쓸 수 있게 만든 문이어서 암문이라 부른다.

